부안역사/문화기행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by 부안이야기 posted Feb 14, 2017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열 세명의 천사들이 둥지를 튼 주산중학교


| 2017·02·13 0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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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새로 만난 천국의 아이들

거의 20년 만에 부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동료를 믿고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겠노라고 수시로 외워댔건만, 절인 배추마냥 지쳐가는 심신은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그저 작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는데, 작년에 전주를 떠나면서 용케도 이곳 주산에 깃들이게 되었다. 그 전 해 우리 반 아이들이 36명이었는데, 전교생이 18명이라니…. 그나마 올해는 13명.
대도시 아이들과 이곳 농촌의 작은 학교 아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 아이들인가 싶을 만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도시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펼쳐지는 불미스러운 풍경을 보라. 엄마가 남친을 나무라자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채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아이, 카톡을 씹었다고 친구의 따귀를 올려붙인 아이, 친구와 갈등 끝에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던진 아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수시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투들, 학교는 지금 전쟁터 아니면 수용소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학부모들이 대거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사회 변화에 한 발짝 앞서서 학교를 바꿔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었던 게 아닐까?


▲ ‘작가와의 만남’-농사꾼 시인, 박형진을 찾아서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어쩌면 작은 학교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만난 아이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지상 천사라 할 만했다. 적어도 생지옥에서 갓 벗어난 내 눈에는 진실로 그렇게 보였다. 처음 마주친 아이들은 티 없이 맑고 욕심이 없어 보였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비경쟁적인 경쟁을 했다. 3학년 여학생의 입에서 ‘케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후배 중에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고, 그 일을 누구에게도 미루지 않고 서로서로 찾아서 해나갔다. 몸이 자주 아픈 친구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거나, 좀 더딘 친구를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고 기회를 준다거나, 다소 모나게 행동하는 후배에게 따끔하게 충고해 준다거나 하는 등의 공동체 정신과 자치 능력을 아이들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완성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고귀한 품성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어떤 면에서 아이들은 내가 보고 배워야 할 스승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차단이 된 이른바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교육 없고, 폭력 없고, 따돌림 없는, 무엇보다 살풍경한 경쟁이 없는 평화로운 공간이랄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무한 경쟁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지난 세월 겪어왔던 아이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이를 웅변해 주고 있었다. 궁벽한 농촌 마을에서 자라고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건강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채우고도 남을 귀중한 유산을 아이들은 남모르게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도시 아이들에게서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자연에 대한 감수성, 공동체성, 이기심과 경쟁에 찌들지 않은 순수성과 같은 미덕이 그것이다. 성장기에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둘. 배우고 성장하며

방과 후에 돌봄교실을 밤 8시 30분까지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진종일 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점심, 저녁을 한 식탁에 둘러 앉아서 같이 먹고 동고동락하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한 식구요, 형제와 다를 바 없다.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김살 없이 평온한 아이들을 보며, 이전 학교에서 끝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아이를 문득문득 떠올리게 된다. 여느 아이처럼 사랑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던 그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생활했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 했을까?





교사라면 수업할 때 공감에서 오는 어떤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무슨 말을 했을 때 고요한 가운데 전해지는 떨림 같은 것이다. 아이들과 활발하게 교감할수록 이러한 경험을 자주하게 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공감과 교감을 경험하는 아이들과 교사라 한다면 더 없이 행복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들은 낚싯줄의 팽팽한 손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하듯이, 교사도 아이들의 반응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확실히 도시와 이곳의 교실은 공기가 다르다. 주산의 아이들은 마음이 활짝 열려있다. 그래서 수용성 또한 뛰어나다. 고난도의 개념을 매우 쉽게 납득하는 걸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사실, 도시의 교실에서는 대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가 많다. 교사로서 이런 때 가장 비애스럽고 서글퍼진다.
아이들을 보며 평소 좀 안타까이 여기는 게 하나 있었다. 큰 학교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위축감이나 열등감을 갖는 것이다.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와 자연이라는 배움터 안에서 학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들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인데도, 자신의 처지를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지 않나 싶다. 마음 밭이 훌륭한 우리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뭔가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자신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주산초등학교


셋.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첫 실타래를 ‘책 읽기’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듯이, 학원에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북 교육청 공모사업인 ‘사제동행 독서 동아리’에 지원했는데 탈락의 쓴맛을 봤고, 다시 ‘작가와 만남’ 사업에 지원해서 뽑혔다. 작가는 부안 모항의 박형진 시인으로 정했다. 부안 출신인데다 농민 시인이어서 아이들과 공감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아이들에게는 시인이 쓴 시집 2권, 동화집 1권, 산문집 1권씩을 사주고 여름 방학 전까지 읽도록 했다.
방학때는 학년 별로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단편영화를 찍는 미션을 주었다. 시나리오 작성부터 연기 연습, 촬영과 편집 등 모든 활동은 철저하게 학년 모둠별로 자주성을 갖고 진행했고, 학교에서는 교통비, 식비 등 예산 지원을 했다. 1학년은 마을 근처를 무대로 연기를 했고, 2학년은 시인을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 하고 다큐를 찍었으며, 3학년은 모항 바닷가에 가서 극영화를 찍었다. 개학하고 나서 교내 단편 영화 경연 대회를 열었는데, 선생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새겨 놓게 되었다.
이어서 모항 바닷가 마을로 박형진 시인을 찾아갔다. 먼저 바닷가 모래밭에서 학년 모둠별로 준비한 독서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경연대회를 했다. 책의 내용으로 노래 가사 개사를 하고 연습해서 노래까지 부르는 행사였다. 박형진 시인이 즉석 심사위원을 해 주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열띤 경연이 펼쳐졌는데,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무엇보다도 박형진 시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이들이 과연 세대를 뛰어넘어 시인과 공감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했는데, 1시간 남짓의 시인 이야기에 아이들은 예상 외로 흠뻑 빠져들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나서 서울에서 독학을 하다가 우연히 신동엽 시인의 시집 『금강』을 읽은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 감동스럽게도 40여 년 전 시집 『금강』을 손수 베껴 쓴 빛바랜 종이뭉치를 보여 주기도 했다.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한다’는 대목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박형진 시인을 만나고 온 이후 아이들은 뭔가 눈빛이 달라졌고, 한동안 도서실 서가를 찾는 발길이 잦아졌다.


▲‘예술철가방’-스티커 벽화

또 하나 아이들에게 준비한 선물은 ‘예술 철가방’이었다. 전국적인 공모 사업에 지원해서 선정이 되었다. 학교에 아이들 손으로 그린 벽화를 남겨주고 싶었는데, 마침 스티커 벽화 제작이라는 참신한 기획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정말로 철가방을 들고 나타나서 3시간 동안 두 개 모둠으로 나누어서 창조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두 군데의 벽에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스티커 벽화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아이들이 몸으로 그린 벽화는 아이들 가슴에, 학교 벽에 영원히 아로새겨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또 한 가지는 ‘자치’의 경험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자치의 의미가 아닐까? 흔히 교육 문제 해결의 주체로 교사와 학부모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문제 해결의 담지자, 주체로서 학생 언론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학생기자단 공모를 했다. 지원자는 자기소개서를 써 내고 면접(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작년 처음 뽑을 때는 교사 두 명이 면접관을 했고, 올해부터는 선배가 신입생 면접을 했다. 자소서 쓰기와 심층 면접을 통해서 학생은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기표현을 하고, 면접관은 지원자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주산중 최초의 학생 언론 자율 동아리 ‘주산중 허브 기자단’과 학교 신문 ‘푸릇’이 탄생하게 되었다. 작년에 창간호를 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는 자치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넷. 아이들이 하느님이다!


▲학교신문 ‘푸릇’ 창간호

농촌 사회의 몰락과 함께 우리 학교도 인구 절벽으로 고심하고 있다. 학생 수가 조금만 더 늘어난다면 학생 자치 활동이나, 수업, 행사 모두 훨씬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하지만 이에 앞서서 열세 명의 천사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로 이끌어 주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의 모든 것들이 아이들을 위해 존재할 수 있도록 혁신하고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야겠다. 먼저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새로워질 것을 다짐해 본다. 아이들을 진정 하느님처럼 섬기고 있는지…. 돌아가신 윤영규 선생님께서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아이들이 하느님이라고. 90년대 초반 무렵 내변산 어디에서 학생 수련회를 했는데, 강사로 오셨던 윤영규 선생님께서 마침 내 옆 자리에 앉으셔서 건네신 말씀이다. 교직에 막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이 한마디가 당시 내게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형진 시인이 신동엽의 『금강』을 읽고 그랬다는 것처럼. 이후로 윤영규 선생님의 이 말씀은 내 인생의 한 마디로,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 ‘아이들이 하느님이다!’
이 풍진세상(風塵世上)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 상처를 받게끔 되어 있다. 교사, 학생, 학부모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학교가 서로의 상처를 헤집고 덧내는 전쟁터, 괴담의 장소가 아니라 치유와 성장의 공간이 되기를 손 모아 빌어 본다. 더딜지라도 학교 교육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

/이재호(주산중학교 교사)

< 부안이야기 14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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