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역사/문화기행

길은 객사 앞에서 시작된다

by 부안이야기 posted Mar 12, 2017

길은 객사 앞에서 시작된다
[부안읍이야기1] 부안읍성과 지킴이 신앙
| 2017·03·06 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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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동문안당산(중요민속문화재 제19호)


올해는 부안(扶安) 정명(定名)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지역을 ‘부안’이라 부르기 시작한 1416년으로부터 600번째를 맞았다는 것이다. 한 고을이 자신의 이름을 오래도록 유지한 채 고을의 역사와 문화를 축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근 정읍의 고부나 태인은 면으로 규모가 줄고, 고창의 무장과 흥덕도 현에서 면으로 축소되어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부안의 행정 중심인 치소(治所)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살피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믿음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부안고을과 행정치소

전통사회에서 읍성(邑城)이라 함은 그 고을의 행정치소(行政治所)가 있는 곳을 말한다. 나라가 수립되고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으로 미치게 되면서 지방의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행정 중심지에 성을 쌓아 통치의 권위와 위용을 세웠기 때문에 흔히 이를 읍성(邑城)이라 하였다.
부안을 다스렸던 행정 치소는 조선조 이전에는 두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백제시대의 개화현(皆火縣)에서 부령현(扶寧縣)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지금의 행안면 역리, 송정리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한 곳은 백제시대에 흔양매현(欣良買縣), 희안(喜安), 보안현(保安縣)의 치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보안면의 영전리 근처였을 것이다.
이들 부령현과 보안현 두 고을이 1416년(조선조 태종 16년)에 병합되었다. 보안현은 그 치소와 함께 폐현되어 없어지고, 부안현의 치소는 부령현의 치소였던 행안면 역리로부터 지금의 부안읍 성황산을 중심으로 축성된 토성을 읍성으로 하여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추정하는 근거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기록에 의해서다. 이 책은 왕명에 의하여 편찬된 지리서이다. 책의 내용은 각 고을의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천(山川), 토산(土産), 성곽(城郭), 관방(關防), 봉수(烽燧), 누정(樓亭), 학교(學校), 역원(驛院), 불우(佛宇), 교량(橋梁), 사묘(祠廟), 고적(古蹟), 인물(人物) 그리고 그 고을의 풍습과 풍광 등을 시문(詩文)으로 노래하는 것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5백여 년 전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사회, 인문은 물론이요, 민속과 인물의 연구에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전적(典籍)의 하나다.


▲부안읍성/『광여도』에 수록된 부안현 지도(1800년대초,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전주읍성의 3배가 넘는 1만 6천 4백여 척

『신증동국여지승람』 34권, 부안현 성곽, 읍성 조를 보면 부안현의 치소인 부안읍성(扶安邑城)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여 놓고 있다.

읍성 : 흙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천 1백 88척, 높이가 15척이요, 안에 우물이 12개 있으며, 동서남의 삼면에 모두 성문다락(樓)을 세웠다.
신증 :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만 6천 4백 58척, 높이 15척이요, 안에 우물이 16개 있다.


이는 지금은 모두 훼철 되어 버리고 일부 흔적만 조금 남아 있는 부안읍성을 말한 기록으로 치소가 옮겨올 당시에는 토성이었는데 그 후에 견고한 석축의 성을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적(古蹟)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보인다.

고읍성(古邑城) : 현의 동쪽에 있는데 둘레가 5백 척이고, 안에 우물이 6개 있다.
보안폐현(保安廢縣) :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위의 기록에서 보안폐현과 고읍성(古邑城)은 옛 부령현과 보안현이 합병되기 이전 부령현과 보안현의 치소를 이름이요, 고읍성은 부령현의 치소였던 지금의 행안면 역리 뒷산에 있었던 토성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그곳이 부령현의 읍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 기록의 내용 중 동(東)과 서(西)가 잘못 바뀌어 기록되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즉, “현의 동쪽에 있는데(在縣東)”가 아니라, “현의 서쪽에 있는데(在縣西)”로 기록되었어야 할 것이다. 부안읍성의 동쪽에는 덕다리(德村) 마을이 있고 그 뒤에 망기산(望旗山)이 있을 뿐인데, 이 산에는 성곽의 흔적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고을의 치소가 될 만한 터전도 아니다. 이와 같이 고을의 형성은 중심지인 읍성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고을의 규모를 이루므로 읍성과 위치는 매우 중요하였다.
부안읍성의 형태가 토성과 석축성 두 가지로 기록된 것은 처음의 토성은 부령, 보안 두 현이 합병된 후 부안현이 치소를 지금의 부안읍내 성황산 밑 동남 좌향으로 옮길 당시의 성이 토성이었던 것이며, 토성이 좁고 튼튼하지 못하여 석축의 평산성(平山城) 형태로 넓고 견고하게 다시 쌓은 것이 석축성인 것이다.
이 개축된 석축의 부안읍성은 그 규모가 유난히 크고 넓었다. 부안읍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고을들, 고부, 흥덕, 고창, 만경, 옥구, 임피 등의 읍성의 둘레가 고작 2~3천여 척에 지나지 않고 지금 남아 있는 고창의 모양성도 3천 80척이고, 고사부리성인 고부읍성도 2천 4백여 척에 지나지 않으며 전라도의 감영이 있는 전주의 읍성도 5천 3백여 척에 불과한데 비하여 부안읍성은 전주읍성의 3배가 넘는 1만 6천 4백여 척의 큰 읍성이었다.
지금은 거의 성터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자취를 더듬어 한 바퀴 돌아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원불교 교당 뒤편 아름드리 당산나무 옆으로 (지금은 고목의 그루터기만 남았지만) 토담의 자취처럼 남아있는 성터를 따라 완만한 산비탈을 오르면 옛 망해루(望海樓)가 있었던 북쪽으로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부성루(扶城樓)를 지나 성황사를 감고 북동으로 돌다가 동쪽의 급경사를 내려서 동문안 당산의 석장승 한 쌍이 있는 곳에서 성의 동문을 이룬다.
동문에서 방향을 동남방으로 돌려 숙후리 서답바위 옆을 지나 구영말(九英里, 東中里)의 뒷등성이를 감고 돌아 상원아파트 못 미쳐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남일당한약방 앞에서 남문거리를 이루고 부안초등학교 뒷담 옆을 지나 부안신협의 남측으로 해서 원불교 교당 앞에서 서문거리를 이루면서 높이 15척에 둘레 16,458척, 우물 16개를 보유하는 부안읍성을 이루었다.


길은 객사 앞에서 시작된다

객사(客舍)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부안군청 자리다. 객사의 이름은 부풍관(扶風館)인데 부풍(扶風)이란 예로부터 불러온 부안의 이름이며 별호다. 객사는 동헌 다음으로 중요한 건물이어서 어느 고을이나 관아와 가까운 곳에 세웠다. 객사에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현감이나 군수가 새로 부임 또는 이임할 때 그 앞에서 이·취임식을 거행하며,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궁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하였으며 중앙관서에서 파견된 관리 등이 머물던 곳이다. 궁궐에서 임금을 모시고 정사를 보듯이 지방에 있지만 항시 임금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린다는 자세와 마음을 다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부안의 객사는 1926년에 훼철되고 그 자리에 부안군청이 들어섰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부안 지방의 주요 도로는 세 곳이었다. 그것은 객사 앞에서 시작하는 동도와 서도와 남도이다. 동도는 동진강의 나루를 건너 서울과 동북부 방면으로 왕래하는 동진나루 길이었다. 부안읍성의 동문을 나서서 혜성병원 옆 장승배기를 지나 고마제를 끼고 동진장터와 청운동의 동진원을 지나면 장등리 앞의 동진나루에 다다른다. 이 길이 부안의 관문격인 제일 큰 도로였다.
남도는 읍성의 남문을 나서 오리정, 매창뜸을 지나 학당고개를 넘어 네거리, 월촌, 선돌을 지나 줄포, 흥덕에 이르는 길이다. 서도는 서문을 나서면 성밖(성밖의 마을)이다. 이 서쪽 길은 향교 앞을 지나 삼메산 고개를 넘어 궁안 삼간평을 지나 등룡리, 야방모퉁이를 돌아 비들기재를 넘어 해창에 이르는 길이다.


부안 지킴이

부안읍성의 동서와 그리고 남쪽의 세 곳 성문거리에는 돌을 깎아 세운 석조신간(石造神竿)의 솟대당산과 한 쌍씩의 돌장승이 조성되어 성안 사람들의 지킴이 신으로 받들어져 오고 있다. 이들 성문거리의 지킴이 신들은 성안 사람들의 안과태평(安過太平), 원화소복(遠禍召福) 그리고 자손의 번창과 풍농 풍요, 병마퇴치 등을 담당한 수호의 신으로 지금도 동문안의 당산거리에서는 신앙적인 제의의 행사가 잘 계승되어 오고 있다.
서문안당산과 동문안당산은 보물급의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18호와 제19호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남문안당산도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매우 귀중한 민간신앙의 문화재들이어서 민속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많은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제의가 행하여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당산(堂山)’이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말하며 이 당산신을 모신 지역은 먼 옛날부터 마을의 성지로 받들어 왔다. 우리 겨레들이 당산신을 모셔온 시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먼 옛날 인류가 탄생되어 생활을 시작한 초기부터 자연신을 경외하면서 그 최고신인 하느님(天神)을 받드는 원시신앙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부족국가 시대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큰 행사는 하늘에 제사하는 일이었으며, 이 일과 나라의 정사를 펴는 일은 같은 개념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하늘을 받드는 제사 모시는 일이 바로 정사를 보는 일이라 하여 제정일치(祭政一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당산이 마을을 지켜주는 또 하나의 작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여겼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당산나무나 솟대의 신간 위에는 하느님이 좌정하여 우리들을 굽어 살피고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그래서 당산거리는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요 항시 정결하여야 하였다.
솟대당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우리 사서가 아닌 중국의 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마한 조와 『후한서(後漢書)』의 마한 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0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나라마다 한 사람의 천군(天君)이라는 사제자를 뽑아 천신(天神)에게 제사하였고 각기 별읍(別邑)을 두고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였으며 긴 장대를 세워 거기에 방울을 달아 신을 받들었다.

이는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시대에 이미 충청·전라지방에 있었던 마한에서 하느님에게 제사한 내용의 기록이다. 별읍(別邑)을 소도(蘇塗), 즉 솟대라 하였는데 이곳이 천신을 모신 곳으로 당산지역을 말하며 거기에 방울을 달아맨 긴 장대를 세우고 그 아래에서 천군(天君)이라 부르는 사제자를 중심으로 하늘에 풍농을 감사하고 고을의 무사태평을 빌었다. 천군은 사제장으로 무당이며 방울을 단 긴 장대는 오늘의 솟대당산이다. 따라서 당산은 이와 같이 먼 역사적 뿌리에 바탕을 둔 마을 지킴이의 천신(天神)이며 공동 신앙적 제의로 특히 충청·전라지방에서 강하게 시행하여 왔던 우리 겨레의 기층문화였다.
옛날부터 이 지방의 거의 모든 마을마다 그 마을의 지킴이 신을 받드는 당산이 있었고 해가 바뀌어 새해를 맞는 정초에는 마을의 축제를 겸한 당산제를 지내왔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로 우리 고유의 문물은 쇠퇴되고 특히 무격적인 민간신앙은 거의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부안지방에는 아직도 20여 곳의 마을에서 당산제의가 잔존 문화의 형태로 존속되고 있는데 근래에는 일부 마을에서 끊겼던 당산제를 다시 복원하여 지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당산제가 존속되는 곳은 부안읍내 성안 당산제 중 동문안 당산제를 비롯하여 내요리 돌모산 당산제, 계화면의 대벌리 당산제, 상서면의 성암리 당산제, 하서면의 섶못 당산제, 보안면의 입석리 선돌 당산제와 우동리 당산제, 진서면의 구진마을 당산제와 운호리 당산제를 비롯하여 원암리 당산제, 작당마을 당산제, 변산면의 수성당제, 띠목(茅項)당산제와 위도면의 진말 당제, 대리마을 원당제, 치도리 당제, 식도리 당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마을들의 당산 지역을 살펴보면 마을의 주령(主嶺)이 아니면 동구(洞口)의 노거수 당산나무가 있는 곳으로 노거수가 당산신의 신체(神體)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몇몇 마을은 솟대신간(神竿), 선돌, 장승, 또는 짐대 등이 혼재된 마을들도 있다. 그리고 해안지역의 마을이나 섬에는 당산신을 주로 당집에 모시며 탱화를 신주(神主)로 한 곳이 많다. 당집에 모셔진 이들 당산신들도 그 기능면에서 볼 때 마을 수호의 기능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신격(神格)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안동문안당산 상원주장군(왼쪽), 부안동문안당산 하원당장군(오른쪽)


성문거리의 당산

부안읍성의 성문거리에 조성된 당산의 신체는 오리솟대의 석간신주(石竿神柱)와 한 쌍씩의 장승으로 조성 배치되어 있다. 오리솟대 당산 신간이 마을지킴이의 주신(主神)이요, 돌장승들은 주신을 돕는 보조기능의 하위(下位) 당산신장으로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수문장 격이어서 흔히 문지기장군이라고도 말한다.
당산신의 호칭은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호칭이다.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이다. 당산신을 할아버지, 할머니로 호칭하는 것은 친숙한 가족 같은 개념으로 의인화한 것이며, 마을공동체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장 어른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과 여 양성으로 호칭하는 것도 당산신이 부부로 이루어져야 다산과 풍요, 그리고 번창을 이룰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부부가 있어야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으며, 아이를 많이 낳는 일이 곧 생산이요, 풍요며 번영이라고 본 것이다.


▲부안서문안당산(중요민속문화재 제18호)

그러기에 장승도 외짝의 독장승은 없다. 반드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며,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다. 대부분의 마을 당산이 웃당산과 아랫당산으로 이루어지는데 웃당산은 할아버지당산이고, 아랫당산은 할머니당산이며, 중거리당산이 있는 경우 이는 아들 당산이다. 따라서 당산신이 깃든 당산나무 또한 죽은 나무가 아닌 생목(生木)이어야 하고, 당산나무가 고사하면 산 나무로 교체하여 모신다.
이와 같이 당산신은 철저하게 부부로 조성되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받들었으며, 마을사람들의 구심체적 신앙체로 있으면서 마을문화의 중심 기능도 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통사회에서 당산의 기능은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해 주고, 화합과 단결의 계기가 되어주곤 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부안읍 성안 당산 중 서문거리의 당산은 이와 같은 다산적(多産的)인 구조면에서 볼 때 가장 짜임새 있게 그리고 완벽하게 조성된 부부당산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당산인 솟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 한 쌍이요, 그 하위당산인 돌장승도 상원주장군, 하원당장군 부부 장승이다. 더욱이 주당산의 오리는 알을 많이 낳으라고 그 받침돌 위에 아홉 개의 알받이 구멍까지 파 놓았는데 이를 섹스를 상징하는 성혈(性穴)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돌을 비벼 구멍을 파는 행위가 성적 교합의 행위라는 것이며, 이 성교적인 행위가 이들 당산신에게 생산, 다산, 풍요,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의 주술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산제 때에 보면 그 알받이 구멍에 쌀을 소복하게 채워 놓고 제사를 지냈었다.


▲부안서문안당산 상원주장군(왼쪽), 부안서문안당산 하원당장군(오른쪽)


관아를 중심으로 부챗살 형국을 이루어

◀ 부안서문안당산 할머니당산/할아버지당산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형태로 세워졌을 것으로 판단되나 돌기둥 상단부가 떨어져 나갔다. 돌기둥의 자연석 기단 위에는 10여 개의 구멍이 파졌는데 이 구멍은 위의 오리가 알을 낳으면 받는 ‘알받이 구멍’이라 한다.

부안읍 성안 당산의 조성배치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부안읍 성안 당산처럼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성문안에 동구당산(洞口堂山)을 조성하여 세운 사례는 타 지역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다. 고창읍내 오거리 갓당산은 모양성 밖 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마을들의 당산으로 1803년에 세운 풍수적 행주지형(行舟地形)의 비보적(裨補的)인 기능을 강조한 당산이지만 부안읍내 성안 당산은 성을 중심으로 성문을 수호하도록 한 동구 수호의 기능을 강조한 당산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읍성의 동문과 서문 입구에 문지기 장군이라 부르는 석장승 한 쌍씩을 조성하여 세운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을의 원님이 정사를 펴는 관아를 중심으로 세 곳 성문과의 거리 또한 일정하다.
장승은 그 주된 기능에 따라서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마을의 입구에 세워져 침입하여 오는 병마나 역귀, 잡귀와 도적, 또는 부정한 모든 것들을 물리치는 동구벽사장승(洞口辟邪長丞)과 길거리에 세워져 나그네에게 이정(里程)을 알려주고 여행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이정표장승(里程標長丞)이다. 풍수신앙에 의하여 고을의 허한 곳을 비보(裨補)하는 읍락비보장승(邑落裨補長丞), 그리고 큰 사찰의 입구 또는 그 주변에 세워져 여기서부터는 부처님이 계시는 거룩한 도장이니 살생을 금하며,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일깨워주는 호법사찰장승 등이 있다. 부안읍내 동문안과 서문안 장승은 마을의 출입구를 지켜주는 동구벽사(洞口辟邪)류의 장승이다.
부안읍 성안 당산의 조성 배치가 다분히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세 곳 당산의 위치가 고을의 원님이 정사를 펴는 관아를 중심으로 부챗살 형국을 이루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관아가 있었던 부안군청 뒤 지금의 감리교회 자리를 기준으로 동문, 서문, 남문 안 당산과의 거리는 각기 약 300m 쯤이고, 성문들로부터는 안쪽으로 60m 쯤 되는 곳에 이들 오리 솟대당산들을 조성하여 세운 것이다. 성곽의 형태가 평산성이고 그 규모가 크고 넓어 그 허함을 당산 신에 의지하려는 계획된 배치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맺는 말

필자는 성황산 밑 서문안 당산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아왔다. 요즘도 눈을 감으면 성황산에 올랐던 일이며 주변 지인들과 부안을 돌아보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으며 대화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그윽한 사랑의 눈으로 고향에 깃든 옛 얘기를 찾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웃으며 우리에게 정답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다. 부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간직하고 지킬 만한 곳을 찾아내고 보존하며 자랑하는 일이 봄꽃처럼 피어나고 결실하기를 기대한다.

/김형주(전 부안여자고등학교 교장, (사)부안이야기 고문)

<부안이야기 15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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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 부안역사/문화기행 부안 김씨, 중앙 정계에 진출하다 부안 김씨, 중앙 정계에 진출하다 고려시대 부안 김씨 이야기| 2017·02·06 11:57 | ▲변산면 소재지인 지서리(知西里)-예전에 조수가 드나들던 포구마을로 땅이름... file 부안이야기 2017.02.14 60
767 부안생태기행 “화살대는 도이관에서 난다” “화살대는 도이관에서 난다” [2017년 2월 달력] '이대' | 2017·02·01 00:36 | 이용방법 : 그림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고 '배경으로 지정'이라는 팝메뉴를 ... file 부안이야기 2017.02.07 62
766 부안역사/문화기행 신문기사 속에 살아 있는 줄포이야기 신문기사 속에 살아 있는 줄포이야기 1920~30년대 &lt;동아일보&gt;에서 찾은 기억| 2016·12·21 06:16 | ▲1980년 말에 찍은 사진으로 배말뚝 너머로 삼양사 매갈이간이 ... file 부안이야기 2017.02.07 75
765 부안생태기행 '단풍나무의 시샘’ '단풍나무의 시샘’ [2016년 11월 달력] '화살나무'| 2016·11·07 17:03 | 이용방법 : 그림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고 '배경으로 지정'이라는 팝메뉴를 누르시... file 부안이야기 2016.11.16 90
764 부안역사/문화기행 "나를 키운 건 8할이 줄포다!" &quot;나를 키운 건 8할이 줄포다!&quot; [줄포이야기2] &quot;줄포항엔 물이 차오르지 않았다&quot; | 2016·10·13 10:22 | ▲막내 동생과 줄포 집에서(1978) 과수원집 둘째 손자 줄포... file 부안이야기 2016.10.27 157
763 부안역사/문화기행 [줄포이야기1] 줄포의 숨결을 따라 걷다 번영만큼이나 아픔도 큰 흔적 [줄포이야기1] 줄포의 숨결을 따라 걷다 | 2016·09·27 02:27 | ▲김상만 가옥에서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우리... file 부안이야기 2016.09.27 137
762 부안의 옛길을 따라 걷다 부안의 옛길을 따라 걷다 상술재 너머 염소로와 가야개·동진개 | 2016·09·20 09:47 | ▲상술재 가는 길에서... 필자 「해동지도」에 묘사된 염소로 부안의 진산 ... file 부안이야기 2016.09.20 157
761 부안역사/문화기행 탄환만한 섬 위도에서 일어난 일 탄환만한 섬 위도에서 일어난 일 위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2016·09·12 06:32 | ▲망월봉에서 본 위도의 섬, 섬, 섬 위도(蝟島)는 고려시대 이래 부령현... file 부안이야기 2016.09.12 160
760 부안역사/문화기행 [전북일보]〈부안이야기〉 펴내는 '부안역사문화연구소 [문화&amp;공감] 〈부안이야기〉 펴내는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지역 역사·문화·삶, 문자로 쓰고 책으로 엮다 기고 | desk@jjan.kr / 최종수정 : 2016.06.13 23:4... 부안이야기 2016.06.22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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