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역사/문화기행

곰소에서 죽도를 보다

by 부안이야기 posted Mar 12, 2017
곰소에서 죽도를 보다
부안군과 고창군의 경계지, 신화와 역사의 접선지
| 2017·03·12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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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에서 바라본 죽도


부안군과 고창군의 경계지

“어제 곰소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죽도에 에어콘을 설치하러 갔다. 지척에 있는 섬이지만 행정구역상 죽도는 고창이고 생활권은 곰소다. 죽도에서 바라본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모습은 나즈막한 산으로 이어져 병풍처럼 둘러 있다. 주민의 생계는 어업이고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용한 섬이다. 곰소는 관광지이면서 어촌이라 시끄러운데 죽도는 섬이라 조용해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잠시 머물러 힐링하면 좋을 것 같다.”

곰소에서 삼성전자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죽도(내죽도)의 행정구역은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이다. 죽도는 고창군 땅이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부안군의 곰소를 통해 육지와 교통한다. 물론 썰물 때 고창군 봉암리 쪽으로 걸어서 30분 정도면 육지로 나갈 수 있다. 그 길로 트랙터가 왕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외기로 5분 정도면 곰소 선착장으로 나갈 수 있고 바로 곰소 상권과 이어지기 때문에 섬 사람들의 생활권은 곰소다. 그나마 갯골이 들쑥날쑥해 이마저도 옹삭하다. 2016년 4월에는 이런 사태도 있었다. 소형 선박으로 곰소항을 떠나 죽도 집으로 향하던 한 노인이 썰물로 배가 갯벌에 닿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다 고창소방서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되는 신세를 져야 했다.
부안 사람들이나 곰소 사람들 대부분은 죽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다. 배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죽도에 들어가보고 싶어도 들어갈 방도가 없다. 여객선 따위는 운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죽도 주민이 60명 가량이고 가호수는 20호 정도지만 빈집으로 폐허가 되고 있는 집이 10호 가량이고 거주하는 집이 10호 가량으로 작은 섬인지라 여객선 따위는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죽도는 고창군 땅이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부안군의 곰소를 통해 육지와 교통한다.<네이버지도>

나로서는 줄포에서 줄포만을 바라보면, 늘 줄포만 바다의 한가운데 위치해 고창땅보다 더 가까운 곰소 바로 앞바다의 섬 죽도가 궁금했다.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부안군과 고창군이 나눠져 있다보니 해양생태적으로는 하나의 구역이지만 인문지리 내지는 행정구역으로는 나누어져 있어 결국 해양생태적으로도 나눠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예컨대 부안군에서 관할하는 줄포만갯벌습지보호구역과 고창군에서 관할하는 고창갯벌습지보호구역이 하나의 바다로 생태적 연결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지자체의 이해관계적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죽도는 어쩌면 이 문제를 풀어나갈 매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와 역사의 접선지

곰소 선착장에서 선외기를 타고 서향에 위치한 죽도에 들어가는 길은 예로부터 부안 사람들이 말해 온 ‘곰소둠벙’을 지나친다. 만조일 때는 곰소둠벙이 보이지 않지만 물이 쭉 빠진 썰물일 때는 곰소의 갯벌과 고창의 갯벌 사이로 흐르는 강 같은 바닷물이 보인다. 이를 아마 곰소둠벙이라 했을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곰소강’이라고도 불러 왔다. 곰소둠벙은 변산 수성당에 좌정해 있는 칠산바다의 여신 개양할미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아주 먼 옛날 개양할미는 수성당 옆의 여울굴에서 나와 딸 여덟 명을 낳은 뒤 일곱 딸은 각 도나 섬에 한 명씩 시집보내고, 자신은 막내딸과 함께 수성당에서 살았다. 수성당은 아홉 여신이 좌정해 있다 하여 구낭사라고 하였다. 그 후 구낭사는 어민들이 개양할미를 바다의 성인 같은 존재로 받들어 모셨다 하여 수성당(水聖堂)이라 하고 개양할미를 수성할미라 부르기도 하였다. 개양할미는 키가 어찌나 큰 지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다니면서 깊은 곳을 메우고 위험한 곳을 표시하여 어부들의 안전을 돌보면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였다고 한다. 개양할미가 곰소 앞 바다의 ‘게란여’에 이르렀을 때 이곳이 어찌나 깊은지 개양할미의 치맛자락이 약간 물에 젖은 적이 있었다. 이에 화가 난 개양할미가 육지에서 흙과 돌을 치마에 담아 ‘게란여’를 메웠다고 한다. 이곳은 지금도 깊어서 이 지방의 속담에 깊은 곳을 비유하여 말할 때는 ‘곰소 둠벙 속같이 깊다’라고 한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가 칠산바다의 안쪽인 곰소 앞바다도 관장하였다는 신화의 구성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줄포만 바다 내지는 곰소둠벙이 해양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따라서 죽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상상하도록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죽도에 대해서는 그 기록이 나타나지 않지만 참조할 만한 기사가 나오긴 한다.

“전라감사 정사효가 장계하기를, ‘죄인 박필몽(朴弼夢)이 3월 22일 밤에 무장 배소(配所)로부터 갑자기 도망하여 현감 김몽좌(金夢佐)가 급히 장교를 풀어 추적하였습니다. 박필몽은 태인으로부터 고부 길을 따라 가다가 다시 흥덕 땅으로 향해 해구(海口)로 들어갔는데, 죽도(竹島)는 칠산 앞 바다에 위치해 있어 변산과는 단지 한 대수(帶水)를 사이에 두었을 뿐입니다. 박필몽이 그의 아들 박사침(朴師沈)과 종 명금과 함께 섬 가운데 있는 우거진 대숲 속으로 도망해서 숨어 있는 것을 군교들이 잡아와 모두 엄히 현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니... 박필몽은 박필현과 서로 내통하여 역모를 꾀하고는 거짓으로 도승지(都承旨)가 된 조지(朝旨)가 있다고 하면서 배소로부터 마음대로 출발하여 박필현의 군영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박필현의 군사가 궤멸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해도(海島)로 숨었다가 체포된 것이다.”(영조실록, 1728)

박필몽(1668~1728)은 당시 영조에 반역하는 이인좌의 난에 관여하는 괴수 1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는 소론의 강경파로서 대사헌에 이르기도 했는데 무장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이인좌의 난을 맞아 역모를 꾀하다 극형을 당한 인물이다. 박필몽이 숨어든 죽도에 대해 부안의 역사연구자 정재철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줄포만을 빠져 나가기만 하면 위도를 비롯한 큰 섬과 고군산군도에는 몇 십 개의 섬이 이들의 몸을 숨기기에 충분한데도 죽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필몽이 관계하는 세력은 변산 뿐만 아니라 줄포만을 포함한 칠산바다 정도는 장악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죽도는 왕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서해바다의 작은 해방구였다... 임금이 죄가 있으면 물어야 한다는 박필몽의 이룰 수 없는 꿈은 반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유배지를 떠나 줄포만을 건널 때의 그의 목숨을 건 결단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줄포만의 작은 섬인 죽도에서 관군에 사로잡혀 가면서 원혼처럼 섬 주변을 떠돈다.”(<박필몽, 우반동 김수종을 만나다>)


작은 섬, 생업의 탈선

◀ 죽도에서 어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안 사람 서영수 씨

내가 죽도에 들어간 날은 2017년 1월 14일 오후 3시쯤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봄 날씨 같던 한겨울 날씨가 죽도에 들어가려고 계획한 때에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며 한낮에도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었다. 며칠을 미루다 그나마 춥기는 해도 짖궂은 날씨는 아니었는지라 이 날 오후에 선외기 선주가 배 운항을 선뜻 결정해주었다. 선주는 계화면 창북리에 살면서 계화도 일대에서 어업활동을 오랫동안 했던 서영수 씨다. 지금은 부안읍내에 살면서 5년 전쯤부터 죽도에서 바지락과 가무락 어장을 하고 있고 또 폐교된 죽도초등학교(개교 1957년, 폐교 1994, 졸업생 수 101명) 앞바다의 가두리양식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섬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죽도를 한 바퀴 돌아 섬 모습을 살펴보았다. 만조 때이므로 섬의 갯벌은 드러나지 않았고, 남쪽 해안으로는 오래된 가두리양식장 축조물이 거친 파도에 너울대고 있었다. 서쪽 해안과 북쪽 해안은 직벽이고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섬의 이름이 죽도(竹島)인 까닭이다. 접안시설은 남동쪽 해안선에 들어서 있다.


▲죽도 서남부 해안 앞바다에 설치된 가두리양식장. 보수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죽도 동부 해안에 설치된 접안시설


섬은 작다. 면적으로 치면 약 0.05만㎢이다. 접안시설 뒤쪽으로 바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향토문화대제전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소개되어 있다.

“마을 뒤편의 야산 단애면과 마을 안 밭에서 봉암리 죽도 패총이 확인되었으나, 경작에 의해 파괴가 심한 편이다. 무문투기편, 경질타날문투기편, 연질타날문토기편 등이 수집되었다.”

식수는 공동지하수를 사용한다. 약간의 짠기가 있다. 전기는 고창군에서 해저로 연결된 전력케이블을 통해 들어온다. 고창군에서 1억 4000만원을 투자하여 2002년도에 50KW 2기를 자가발전하여 전기를 사용해왔으나 그마저 불편해 부안군의 곰소에서 철탑을 통해 전기를 끌어가려다 관광조망권을 해친다는 곰소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고창군에서 2011년도 총 46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해저테이블을 공사를 통해 전기공급이 시작된 것이다.
어업용 면세유를 사용해온 죽도 사람들에게도 면세유 사태는 피해가지 못했다. 2005년 11월28일자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전북 고창경찰서는 28일 선박 건조증명서를 위조해 어업용 면세유를 공급받은 혐의(사기 등)로 안모씨(51·여)등 1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불법 면세유 유통량이 비교적 적은 어민과 주유소 업자 등 4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창군 내죽도에 살고 있는 이들 어민들은 군산 등지의 조선소 업자들과 짜고 위조한 선박건조증명서를 해당 군청에 제출해 39척의 선적증서를 받은 뒤 작년 한해동안 이를 이용해 어선 한 척에 1일 100ℓ씩 1백10만ℓ13억원어치의 면세유를 수협에서 공급받아 주유소 등을 통해 유통시킨 혐의다.
어민들은 정기검사를 받지 않는 2t 미만 어선만 골라 선박건조증명서 위조 대가로 조선소 업자들에게 최고 1백만원씩 건넸으며 해당 조선소의 전시용 어선이나 비슷한 규모의 어선을 빌려 선박협회에서 실시하는 어선실측 증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구속된 이 섬의 어촌계장 안모씨(87)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아들 등 직계가족 10여명의 명의로 허위 선적증서를 받아 면세유를 빼돌렸다. 경찰은 영세어민인 이들은 최근 수년간 어획량이 감소하자 어업을 접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러 왔으며 선박협회의 어선실측 증명 및 행정기관의 실제 어업 종사 확인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죽도 마을풍경


▲죽도 마을의 흔적



민족신앙의 전통은 사라지고

한국향토문화대제전에는 죽도에 대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흥덕현에 속하였다가 1914년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고창군 심원면에 편입되었다. 입도 시기는 고려 후기로 난민이었던 주씨가 처음 들어왔고 임진왜란 후에는 순흥안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등이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고 서술되어 있다.
2015년에 발간한 <고창의 마을>지에 죽도마을에 대해 글을 쓴 안후상 선생은 2014년 현재 상황으로

“현재 거주하는 성씨로는 광산김씨, 김해김씨, 전주최씨, 이씨, 주씨, 박씨, 나씨 등이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바지락, 백합, 모시조개 등의 어패류를 채취하며, 봄에는 작은 배로 실뱀장어 잡이를 하기도 한다. 참고로, 20여 년 전만 하여도 고기잡이를 하거나 물산을 실어 나르는 큰 배들과 더불어 김 양식업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최성환).”(<한국 자본주의의 산실 ‘봉암리’>)

고 전한다. 안후상 선생은 같은 글에서 죽도의 전통적 삶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전했다.

“380여 년 전에 죽도 사람들은 바다에 떠다니는 용기(龍旗)와 풍물〔징과 꽹과리, 장구 등〕이 들어 있는 궤짝을 건져 올렸다. 건져 올린 궤짝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은 마을 서쪽 숲에다가 영당(靈堂)을 짓고 그 안에다가 용기와 풍물을 정갈히 모셨다. 50여 년 전에 용기와 풍물이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별도로 마련한 용기와 풍물을 영당에다가 다시 모셨다. 매년 정월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40대 이하의 부정 없는 남자를 당산주(堂山主)로 뽑았다. 당산주는 깨끗한 물로 목욕재계하고 술과 색을 금하였다. 제를 지내기 전에 해산이 임박한 임신부나 해산한 부녀는 마을 밖으로 잠시 내보냈다(김남수).
정월 초사흘 오후 8시에 영당에 모인 사람들은 술과 떡, 밥, 소머리, 과실, 나물 등을 차리고, 그리고 용기를 꽂고서 풍물을 치면서 용왕과 산신령께 마을의 안녕과 행운을 빌었다. 이름 하여 죽도의 용신제와 산신제다. 제를 지내지 않으면 마을에 불행한 일이 생기고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를 지낸 후에는 당산주의 음복을 시작으로 차린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하루 종일 풍물을 치면서 놀았다.
근래에는 정월 초사흘에 영당 부근의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와 함께 용신제를 지냈다(최성환). 1980년 경에 영당이 무너져버리면서 당산제와 용신제가 중단되었다(김남수). 영당이 무너지면서 기물들도 사라졌고, 당산제와 용신제가 중단되면서 큰 배들의 자취도 감춰버렸다(김남수, 최성환). 당산제와는 별도의 오색기로 치장된 배에서 풍어와 안전을 비는 ‘고사(告祀)’가 매년 섣달 그음에 있었으나, 이 역시도 중단되고 말았다(김남수). 현 죽도초등학교(뒤에 봉암초등학교 죽도분교가 되었다가 폐교됨) 근처에 있던 영당은 무너져 방치된 이후에 대숲으로 우거져버렸고, 영당 근처의 당산나무 두 그루도 아이들의 장난으로 불타버렸다(김남수, 최성환).”


한국향토문화대제전에 서술된 내용을 더 언급하면,

“섣달그믐에 장을 보러 가서 소머리 등의 제수를 장만한다. 이때 제를 지내는 3일 동안 당산주는 집에도 가지 않고 소변을 본 다음에도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당산제 때는 술과 떡, 밥, 소머리, 과실, 나물 등을 차려놓고 산신에게 마을의 무사안녕을 빈다. 제를 지내고 난 다음 당산주가 음복한 후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풍물을 치며 논다.”

고 되어 있다. 또한

“1970년대 중반 무렵 마을에 교회가 생기고, 새마을 운동이 진행되면서 당산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당산제를 지내지 않게 되자 용당기도 쥐가 쏠아서 구멍이 나버리고, 세월이 흘러 영당 건물도 무너져 버려 사용했던 기물과 함께 땅속에 묻혀버렸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않으며, 그대로 방치해 두어 지금은 대숲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도 없다. 마을에서 복원 신청을 한 지 2009년을 기준으로 7~8년 정도 되었으나 아직까지 복원 사업에 관한 별다른 계획은 없다.”

라고도 서술한다.


사람 사는 향기가 나는 섬으로

“고창군 부안면 내죽도에 오는 2017년까지 45억이 투자된다. 고창군은 제3차 도서종합개발사업을 확정, 고시한 데 이어 지난 4월부터 갯벌건강공원 전망대 신축공사를 벌이고 있으며 올 10월에 준공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총사업비 45억 7700만원을 투입하여 오는 2017년까지 10개년 사업으로 갯벌건강공원 조성, 해안순환도로, 향토갯벌 민박단지 조성, 갯벌건강 체험시설, 공중화장실 등을 조성한다. 5건의 유형화 사업 중 갯벌건강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토지매입 협의를 진행 중에 있으며, 토지매입이 완료된 부지에 갯벌건강공원 전망대 신축공사를 올 6월에 착공하여 10월 준공을 목표로 한창 진행 중이다. 유일한 유인도인 내죽도에는 34가구 77명이 어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내죽도는 갯벌과 원시 자연환경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는 있어 관광 개발여건이 양호하였으나 기반시설이 미비하여 지역 균형 개발을 필요로 했던 곳이다. 앞으로 도서의 여건과 특성을 고려한 유형화 종합계획으로 해양관광수요인 체험, 휴양 등의 기능을 가진 친환경적 내죽도 갯벌건강 공원조성으로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도서민 어업 외 소득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망대 옆에 조성된 건강공원


▲2009년도에 설계된 죽도종합개발 조망도


<고창신문>이 2009년 7월 16일자에 내보낸 기사다. 거창한 조망도가 그려졌지만 2017년 현재 완성된 것은 아마도 갯벌건강공원 전망대 뿐인 듯 하다. 죽도는 2002년에 해양수산부의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시간의 흐름 속애서 잃어버리고 있다. 죽도에서 빠져나와 다시 곰소에서 죽도를 바라보며, 사람사는 향기가 나는 죽도의 아름다움이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길섶(문화비평가)

<변산바람꽃 12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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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부안역사/문화기행 [줄포이야기1] 줄포의 숨결을 따라 걷다 번영만큼이나 아픔도 큰 흔적 [줄포이야기1] 줄포의 숨결을 따라 걷다 | 2016·09·27 02:27 | ▲김상만 가옥에서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우리... file 부안이야기 2016.09.27 137
762 부안의 옛길을 따라 걷다 부안의 옛길을 따라 걷다 상술재 너머 염소로와 가야개·동진개 | 2016·09·20 09:47 | ▲상술재 가는 길에서... 필자 「해동지도」에 묘사된 염소로 부안의 진산 ... file 부안이야기 2016.09.20 157
761 부안역사/문화기행 탄환만한 섬 위도에서 일어난 일 탄환만한 섬 위도에서 일어난 일 위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2016·09·12 06:32 | ▲망월봉에서 본 위도의 섬, 섬, 섬 위도(蝟島)는 고려시대 이래 부령현... file 부안이야기 2016.09.12 160
760 부안역사/문화기행 [전북일보]〈부안이야기〉 펴내는 '부안역사문화연구소 [문화&amp;공감] 〈부안이야기〉 펴내는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지역 역사·문화·삶, 문자로 쓰고 책으로 엮다 기고 | desk@jjan.kr / 최종수정 : 2016.06.13 23:4... 부안이야기 2016.06.22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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